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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 리뷰] 킹스맨,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돌리기엔 늦었다

영화 <킹스맨 Kingsman> 

자체평점: ★★☆☆


잘 나가는 미국, 못 나가는 영국


과거에 자신보다 못 났던 친구(혹은 그보다 낮은 급의 상대)가 지금은 자기보다 더 잘 나간다면 얼마나 배가 아픈가.


250년 전 자신의 식민지가 지금은 전세계 슈퍼파워가 되고, 자신은 그의 '푸들'의 처지에 놓여있다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할까.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사상 초유의 제국이 있었다. 대영제국이다. 하지만 2번의 세계대전과 식민지들의 독립으로 과거의 영광은 모두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식민지였던 미국과의 관계는 뒤바뀌어 현재 '부창부수'의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겐 인도와 바꿀 수 없는 '셰익스피어', '해리포터'가 있고, 미국과 달리 자동차 오른쪽 운전대를 고집하는 자존심이 있으며, 근대 최초 민주주의 시발점이 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그저 과거 영광에 대한 현재 시점의 '정신승리'일 뿐이다.


영연방에 속하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운데, 그들을 겨우 달래는데 힘을 쏟는 영국 중앙정부의 모습이 애잔하기만 하다.


그래도 영국하면 영화 <007> 시리즈가 있다. 하지만 <007> 시리즈는 냉전시대 '공산당 괴물'을 때려잡는 전형적인 서방진영의 ''히어로물 영화'일뿐 영국의 특색이 담겨있는 것은 영국 진으로 만든 '마티니'와 '숀 코네리' 2가지다. 


그러다 소련이 해체되고 '악당'이 사라진 <007> 시리즈는 거대 자본이 세계를 점령한다거나 최첨단 레이저를 가진 인공위성을 이용해 역시 세계를 점령한다는 북한(<007 어나더데이>)을 끌어들이는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당시 히어로물의 유행인 '처음으로 되돌아가기' 전략으로 <007 카지노로얄>을 내놓는다. 영화는 한 차원 세련되었지만 런던의 MI6 본부 건물을 제외하고는 영국의 '향기'를 맡기는 힘들었다.(<007 스카이폴>의 OST 가수, 아델은 좋았다)



<킹스맨> 스틸컷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Manners maketh man"


젠틀맨, 우산, 기네스 맥주, 그리고 킹스맨


영화 <킹스맨>은 그런 면에서 철저하게 영국에 의한 영국에 대한 영국을 위한 영화라고 한다면 과다한 해석일까? 영국인하면 연상되는 젠틀맨의 상징 '수트'와 알 수 없는 날씨를 대비한 '우산', 그리고 '펍'에서 마시는 '기네스 맥주'. 자본은 헐리웃 자본일지 몰라도 감독과 배우들까지 모두 '영국제'다.


<킹스맨>은 첩보 액션 장르다. 그럼에도 '착한' 첩보원이 악당과 바로 싸우기보다는 앞으로 후속작들을 내놓을 것이라는 암시를 하듯 러닝타임의 반 이상을 '후계자' 양성의 과정을 보여준다. 


영국 킹스맨의 요원인 해리하트(콜린 퍼스)는 작전 중 사망한 에그시(태론 에거튼)의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17년을 보낸다. 동네 양아치로 성장한 에그시는 해리하트가 주고 간 킹스맨 상징물로 인해 그와 재회를 하게 되고, 에그시는 작전 중 사망한 랜슬롯의 후임을 뽑는 테스트에 추천된다.


요즘같은 취업난에 아버지 덕에 서류심사는 무난하게 통과되고, 이미 단단하게 '만들어진 몸'과 뛰어난 순발력은 시간 제한이라는 영화 편집의 허용과 남자 관객들의 아쉬움 사이에서 간당간당 걸치며 그가 '킹스맨'이 될 수밖에 없는 당위적 현실을 관객들에게 받아들이게 한다



<킹스맨> 스틸컷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

"Oxfords, not Brogues"


악당으로 설정된 미국


그렇다면 이제 그들이 상대해야할 '적'은 누구인가. 바로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스냅백을 쓰고 '맥도날드'를 먹으며 기후변화의 주범이면서 오히려 그것을 걱정하는 '사무엘 L. 잭슨'으로 대표되는 '미국'이다.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은 지구라는 숙주에 기생하는 인간을 바이러스라고 정의하며 이 바이러스의 '개체수'를 감소시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제력을 잃게해서 폭주하게 만드는 유심칩을 무료로 배포한다. 공포영화 <스크림>과 <링>이 사람에게 가장 친숙한 '전화기'를 이용해 공포감을 극대화를 시켰듯이, <킹스맨>에서는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을 이용해 미친 절대자에게 생사여탈권을 줌으로써 영화의 극적 효과를 노렸다.


더불어 발렌타인은 'V-데이'에 맞춰 바이러스 감소 프로젝트에 동참할 사람들을 안전지대로 소집시키는데, 이를 노아의 방주라고 일컬으면서 스스로를 '절대자'의 위치에 놓는다. 이는 마치 세계질서를 미국이 결정한다는 미국의 '경찰국가' 주장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자신을 일컬어 "Decider(결정자)"라고 말했던 부분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연 교회에서의 롱테이크 난투극이었을 것이다. B급 영화에서 볼 법한 선혈이 낭자한 장면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사우스 글래이드 교회'에서 인종차별단체 KKK단에 버금가는 목사의 설교가 이어지는 가운데 '흑인' 절대자 발렌타인이 이들을 상대로 '유심칩 실험'을 하는 모습이 의미심장하다.


해리하트가 이곳에서 결국 목숨을 잃는데, 하필 왜 발렌타인은 인종차별 교회에서 '실험'을 했을까? 어차피 그들은 사회에서 '필요없고 해로운' 사람들이므로 그런 식으로 처리되어도 괜찮다는 뜻일까? 미국은 과거 우생학을 근거로 '단종법'을 제정해 열등한 유전자의 '생산'을 막기 위해 간질환자, 정신박약자, 저능아를 상대로 강제 불임수술을 자행했다. 또한 냉전 시대에 원자탄 실험을 위해 태평양 섬에 거주하는 원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또는 많은 원주민들이 방사능에 피폭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는 미국으로서는 숨기고 싶은 역사이지만, 이를 영화 <킹스맨>을 통해 은유로써 고발하고 있다. '미국은 죽어간다 AMERICA IS DOOMED'는 이러한 메타포에 한 연장선에 있다.


(여기에서 사족을 추가하자면, 사무엘 L. 잭슨이 출연한 영화중에 <킬빌>이 있는데 여기에서 교회에서 결혼하는 부부와 하객들을 상대로 무참한 총살극이 벌어진다. 이에 대한 오마쥬는 아니었을지 궁금하다.)


영국식 자조 유머


이 영화의 소소한 볼거리라면 영국식 유머도 빼놓을 수 없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영국은 미국을 상대하는 자신들의 외교를 스스로 '푸들외교'라고 꼬집는다. 영화에서도 보면 각 킹스맨 후보들이 강아지를 선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록시는 푸들을 선택한다. 그리고 푸들을 선택한 이유로 "충성심이 강하고 길들이기 싶다"며 말하는데, 아마 영국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자조섞인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또한 해리하트의 첫 임무는 마가렛 대처 수상의 암살을 막은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에그시는 "모두가 고마워하진 않았겠네요"라며 비꼰다. 이는 과거 '영국병'에 걸린 영국에 과감한 '신자유주의 체제'를 받아들여 경제는 성장시키지만 많은 실직자를 양산하고 빈부격차를 초래한 마가렛 대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입장을 표현한 것이다. 침체된 영국을 일으켜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을 얻지만 반대로 그가 2013년 사망했을 때 그의 죽음을 축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킹스맨> 스틸컷

"25-26"


바이러스 VS 바이러스, 영국의 착각


광기에 사로잡힌 절대자 발렌타인을 막으려는 '영국' 킹스맨 활약의 최고 절정은 '안전지대'에서의 에그시표 원맨쇼로 귀결된다. <007>을 넘어 <오스틴 파워>가 느껴지는 활극 속에 에그시는 멀린에게 '동조자' 머리에 심어진 칩을 이용해 자폭 명령을 내리게 한다. 그리고 팡팡 터지는 수박통(?)들과 함께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이 흘러나온다. "우리 영국 아직 안 죽었거든!"이라는 메시지를 풀풀 풍기면서 흐르는 이 음악은 저물어가는 대영제국의 과거 영광을 그리워하면서 국민들을 고취시키는 음악이니 그 알량한 자존심에 대한 애잔함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최근 IS 사태와 우크라이나 내전 사태까지 낀데 안 낀데 없이 세계 모든 문제에 간섭하고 오지랖을 펼치며 세계 패권국가를 자임하며 '악행'을 휘두르고 있는 미국의 버르장머리를 고칠 나라는 '영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국은 스스로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항해시대 5000만명이 넘는 노예 장사로 돈 벌고,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신민을 양성하며, 면화를 독점하기 위해 인도의 면직 기술자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중국과의 무역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아편을 대량공급했던 영국이다. 또한 우리에게 있어서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자금과 전쟁물자를 공급했던 역사가 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자국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독일과 소련의 전쟁을 수수방관했다. 또한 통일 후 독일을 힘을 무서워하여 끝까지 독일 통일을 반대했었다.


이러고도 세계 평화 운운하며 수트를 입은 '젠틀맨'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악당을 물리친다고 하는데, 이 영화 내용을 빗대서 말한다면 그저 바이러스와 바이러스와의 싸움일 뿐이다. 


애국심 마케팅 영화는 한 번으로 충분


중국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영웅>에서 춘추전국시대에 모국 조나라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해 무명(이연걸)은 진시황제 앞까지 가지만 결국 '천하'의 평화를 위해 개인적 복수를 포기한다. 이후 이 영화는 중국의 '중화사상'이 깊이 베어있다는 해석들이 나왔는데, <킹스맨>도 비슷한 부류가 아닌가 싶다. 단순하게 첩보 액션 영화로 봐도 무방하겠지만, 후반부에 흘러나오는 <위풍당당 행진곡>에 '국뽕'을 맞았을 영국 관객들을 생각하니, 현실은 '푸들'인 상황에서 과거 '위풍당당'한 대영제국에 대한 열망과 2007년 한국에서 "우리도 헐리웃에 진출했다"고 흥분했던 영화 <디워>의 상황이 기시감(데자뷰)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제작사가 '20세기 폭스사'인걸 보니 앞으로 <킹스맨> 후속작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독고다이로 플레이했던 미국의 히어로들이 모두 한데 모여 "미국 짱짱맨"이라고 외치는 것이 빅맥세트 2개 먹은 것마냥 속이 느끼한데, 혹시나 <킹스맨> 후속작들이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Manners maketh man"를 외치며 맛없는 영국음식 피쉬앤칩스를 강권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이보다 큰 실망은 없을 것이다. 너무 과한 것은 모자른 것만 못하다. 첩보 액션 영화는 단순해야 재밌다. 정치적 의미를 넣는 순간 관객들은 영화를 외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