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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황해] 해석 리뷰 - 처절하게 이용당하는 조선족의 잔인한 생존기

"지금 개병이 돌고 있다"


얼마 전 <해무>라는 영화가 개봉했었다. 실제 조선족들의 선내 반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였다. 배 안에서 반란을 주동하고 살인을 한 조선족 남성은 원래 중국에서 선한 성격의 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이 어쩌다 그리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는 배 안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와 폭력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또 <황해>라는 영화가 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악마가 되어야 했던 한 조선족 남성의 <남조선 생존 탈출기>다. 그는 과연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



1. 택시 운전수


주인공 구남(하정우)은 조선족 출신으로 중국 연변에서 택시 운전수로 살아간다. 아내의 한국 취업 비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를 이용하고, 아내는 한국으로 일을 하러 떠난다. 하지만 아내는 연락이 끊기고 사채업자는 빛독촉을 해오는 상황에서 도박인 마작에 중독된 생활과 직업인 택시 운전수 생활을 번갈아하며 힘든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면정학(김윤석)에게 거액의 대가로 한국에서의 청부살인을 의뢰받게 된다.


대다수의 조선족들의 출신은 조선인이지만 중국에 살면서 중국인은 아닌, 동시에 중국인들에게 조선족이라는 멸시를 받고 경제적으로도 그리 풍족한 생활을 꾸리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조국은 북조선과 남조선(한국)이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조선보다는 경제적으로 큰 희망을 안고 남조선으로 가길 원한다. 하지만 조국인 남조선은 그들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도 그들은 차별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속한 땅과 핏줄 양쪽에서 철저히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경계인 혹은 주변부 계급으로 가장 잘 치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황해>는 단순히 한 조선족 남자의 피 비린내 나는 사투극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권력 아래 인간성을 상실하고 철저히 자본에 종속되어 이용 당하며 스스로 악마가 되는데 주저함이 없는 인간들의 군상을 잘 보여준다. 



2. 살인자


살인 청부의 대상자인 김승현(곽도원)으로부터 사우나비 2만원을 받은 구남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구남이 김승현 살인 계획과는 별도로 그의 아내를 찾으러 다니며 느꼈을 조국에서의 추위에 엉겹결에 받았던 2만원에 인간성 회복이라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국에 남겨진 소중한 딸의 안전과 빚청산을 위해서는 그의 인간성을 2만원 지폐의 가치보다 더 떨어뜨려야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무리의 조선족과 김승현의 운전수의 칼에 김승현은 숨을 거두고 살인자라는 누명과 함께 구남은 김승현의 "앰지'를 챙겨 빠져나온다. 그리고는 밀항의 약속장소로 가지만, 민박집이 아닌 아파트 공사판이 그의 눈 앞에 펼쳐지고, 면정학의 전화가 불통되었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속았음을 알게 된다.


모순되게도 구남이 한국으로 밀항할 때 타던 배 이름은 <행복호>였다. 행복을 찾아 떠났던 수많은 조선족들 중 한 여인은 한국 땅을 밟기도 전에 차가운 황해의 제물이 되고, 구남은 가정의 행복과 피 묻은 앰지를 교환하여 행복을 찾으려 했지만, 자신의 조국에서 고립, 수배 되는 아이러니를 맞는다. 입에서는 심한 욕설이 나오지만 아득히 멀어져가는 아내를 꿈꿀 때면 그리움이 한층 더해간다.



3. 조선족


청부 살인을 당한 김승현은 은퇴한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낮에는 체대 교수로 저녁에는 돈 되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낮과 밤이 다른 '어깨'였다. 그에게는 그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아내가 있었고, 동업 관계에 있는 버스회사 사장 김태원이 있었다. 바로 김태원이 김승현의 운전수를 사주해 김승현을 죽이려 했던 배후였다. 하지만 살인에 가담한 조선족 한 명이 도주했고, 이로 인해 김태원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위험에 빠진 것이다. 그 조선족은 구남이었고, 구남을 죽여야 했다. 김태원 부하들이 밀항을 알선하는 조선족들을 '조사'한 결과 연변에서 청부 살인을 주선하는 브로커가 면정학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김태원(조성하) 사장을 김승현의 운전수가 면정학을 브로커 삼아 김승현 살인을 주도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일처리'가 매끈하지 않아 불만이었던 것이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구남을 죽이던가 면정학을 정리해야 했다. 


김태원 사장은 면정학을 정리하기 위해 최성남(이철민) 이사를 연변으로 급파한다. 하지만 면정학의 나와바리에서 너무 일을 쉽게 생각한 탓이었을까. 최이사와 함께 온 부하들의 몸이 분리되는 끔찍한 상황을 맞는다.


원한은 원한,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서울에 온 면정학은 김태원 사장과 만나서 구남을 처리하는 대가로 돈을 받기로 한다. 김태원 사장 입장에서는 구남만 없어지고 면정학이 입을 다물면 김승현 사건은 미제사건이 되고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면정학을 돈을 챙길 수 있으므로 서로 윈윈이다.


"믿고 일 시작합니다" 면정학의 눈빛이 섬뜩하다.


한편 구남의 아내와 동거를 했던 내연남이 조선족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다. 구남은 그 죽은 여성이 자신의 아내인지 궁금하지만 수화기 너머에 경찰은 신분을 함부로 알려주지 않는다.


구남은 자신이 처음 한국에 와서 출국하는 밀항 편을 알려줬던 브로커를 잡아 고문한 후 가까스로 새로운 밀항 배편을 구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얄궂게도 아귀같은 면정학에 의해 좌절될 위기에 처한다. 이미 이쪽 바닥을 꽉 잡고 있는 면정학을 벗어나 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산항 6부두에서의 처절한 혈투 끝에 도망쳐보지만 면정학이 아귀처럼 쫓아온다. 화려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자동차 추격신 끝에 구남은 겨우겨우 면정학을 벗어난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화면 전체가 핏빛으로 넘칠 정도로 끔찍한 흉기 난투극이 벌어지지만 구남은 방어를 위한 공격만 있을 뿐 의도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는다. 구남은 어렸을 때 동네에 개병이 돌 때 개병에 걸린 자신의 개를 묻어주었다. 성격은 난폭하지만 사람을 목숨을 잃게 할 정도로 잔인한 성품은 아니다. 보은에서도 우발적인 경찰의 총격 사망에 도주할 때, 숲 속에서 그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서러워 엉엉 울었다. 택시 운전수였던 그가 어쩌다 도움 주는 이 한 명도 없는 이곳에서 이렇게 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구남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은 2만원을 준 김승현 뿐이었다.



4. 황해 


면정학은 생명력이 질기다. 낮에는 개장수 본업은 살인 청부 브로커다. 그에게 돈과 생존을 뺀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특히 돈은 생존의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김태원 사장이 면정학을 다시 한번 급습할 때에도 칼에 찔리는 부상에도 살아남았다. 면정학 역시 조선족이자 주변부 계급일 뿐이다. 다만 구남보다는 약간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 그러나 중심부 권력의 명령을 받고 실행을 하며 대가로 돈을 챙기는 것은 변함 없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오로지 주변부의 몫이다.


그렇다면 주변부가 중심부를 칠 수 있지 않을까. 흔한 헐리우드 공식대로라면 구남이 자신을 조여오는 상황의 판을 뒤엎어서 중심부로 진출하여 싸워서 이기는 스토리가 있겠지만 <황해>에서는 구남은 단지 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피하고 싶을 뿐이다. 면정학은 중심부를 치긴 치지만 단순히 개인의 원한과 돈 때문이었다. 


사실 <황해>의 진정한 중심부는 배후의 배후인 김정환 뿐이다. 김승현이나 김태원이나 중심부를 지향하는 하층부일 뿐이다. 처음부터 <황해>는 중심부를 꽁꽁 숨겨 놓은 채 바닥 인생들의 칼부림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구남은 김승현의 아내를 만나 결백을 주장하며 김승현 살해의 실체를 꼭 밝혀내겠다고 다짐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아내의 정부인 김정환에게 꼬리를 밟힌 셈이었고, 구남은 자신의 동족인 또 다른 조선족에게 치명타를 맞는다. 


동시에 김태원은 김승현 살해 현장에 자신이 사주한 조선족과 김정환이라는 인물이 사주한 청부 살인 조선족 구남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즉 김승현 운전수가 고용한 조선족 2명과 김정환이 고용한 구남이 같은 목적을 위해 논현동 빌딩에 있었던 것이다. 면정학은 김정환 쪽 브로커였던 것이다. 마침 잔금을 받아내기 위해 혈혈단신 버스 종착지를 찾은 면정학은 또 다시 피 비린내 나는 사투 끝에 김태원을 사로잡지만 돈을 받지 못하고 죽여버린다. 또한 이미 외상을 많이 입은 면정학 역시 숨을 거둔다. 버스 종착지에서 인생의 종착을 맞았다.


피의 잔치가 끝난 자리에 구남이 도착하고 망연자실한 채 쓰러진 김태원에게 가는데 피를 흘리고 있는 김태원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나온다.


"그 놈이 내 여자를 건드렸어"


김태원은 자신의 내연녀를 건드린 사업 파트너 김승현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보잘 것 없는 하층부의 모습이다.


구남은 자신의 아내로 추정되는 이의 뼛가루를 안고 드디어 김정환에게로 향한다. 은행이다. 돈 때문에 이런 지옥에 빠졌던 구남은 너무나 말끔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는 김정환을 발견하지만 그 앞에 앉아있는 김승현의 미망인 아내를 보고 망연자실해 한다.


철저하게 중심부에 농락당한 채 끝을 보려했던 구남은 주변부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집으로 향하기 위해 늙은 어부를 협박하여 어선을 타고 황해를 가른다. 


그가 한국에 왔던 날처럼 어둠이 자욱한 밤에 그리운 아내를 생각하며 한 손에 아이 사진을 쥐고 한국과 중국의 경계인 황해에서 쓸쓸히 긴 잠에 빠진다. 경계인이자 주변부에 지나지 않았던 구남은 황해 깊은 물 속으로 아내와 함께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