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키울 수 없는 인재, 장그래
그냥 "우리, 같이" 일하고 싶다던 장그래의 작은 소망을 회사는 단칼에 짓밟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장그래(임시완)의 첫 사업계획서 승인 통과는 2달 여 동안 밤을 지새웠던 오롯이 그의 성과였다. 오차장(이성민)에게 '헛똑똑이'라는 말을 들어가며 7전8기했던 끝에 따낸 그의 사업은 '카자흐스탄 물탱크 수출 건'. 입사 초기 맬줄도 몰랐던 넥타이를 이제 능숙하게 매는 그의 모습에서 의젓함이 보인 <미생> 16회에서 장그래가 점점 상사맨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템 선정부터 관련업체 선정, 재무 분석 등 어느 것 하나 쉬울게 없었던 장그래는 묻고 또 물어가며 까다로운 재무팀의 승인을 따낸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마치 어린 새가 날기 위해 날개를 갓 펄럭이려는 그의 노력을 매정하게 꺾였다. 종합상사 사업 특성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 담당자가 고정되어 있어야 회사 입장에서는 손실이 없다. 관련 사업을 확장될 수 있는 탓에 곧 떠날 계약직 장그래에게 관련 업체와의 모든 인프라가 구축되는 사업에 담당자로 임명하는 것은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기획실장의 말마따나 회사 입장에서 자기 식구가 아닐 그를 키우는 것 자체가 비용 발생인 것이다.
갈등에 빠진 오 차장은 장그래에게 진실을 말해줘야하는 자신이 매우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장그래만 모르는 상황에서 영업부 전체의 사원들이 장그래를 향한 시선은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계약직은 안 된다고 지시하는 회사도, 그것을 오 차장에게 말하는 부장도, 장그래와 함께 동거동락했던 영업3팀 누구도 마음이 편할리는 없었다. 결국 부장의 호통 탓에 뒷에서 알게 된 장그래는 큰 실망에 빠졌다. 계약직은 계약직이었다. 일반 지상파 드라마였다면 기적적인 정규직 전환의 모습이 나타나겠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미생>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돌을 잃어도 게임은 계속된다는 그의 나레이션처럼 바로 냉정을 찾은 장그래는 오 차장을 향해 나직히 말한다. "카자흐스탄 물탱크 수출 건, 담당자를 바꿔주십시오." "그래, 그러자"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이 상황에서 두 사람은 더 덧붙일 말이 없었다.
2. 전쟁터와 지옥
한편 퇴직한 김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은 오 차장은 낮부터 술잔을 기울인다. 회사와 갈등을 빚고 퇴사하여 수제 피자집을 차린 김 선배란 사람은 대형마트가 동네에 들어선 후 결국 문을 닫았다고 했다. 회사에서 을이었던 그는 사회에서도 을이었다. 두 사람은 화려했던 과거의 무용담들을 늘여놓지만 과거는 과거였다. 회사가 전쟁터였다면, 밖은 지옥이라는 그의 말은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게 술자리를 마치고 서로의 전쟁터와 지옥으로 돌아가기 전 김 선배는 오 차장 주머니 속에 무언가를 찔러 넣는다.
수표 여러장.
수표와 함께 김 선배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편지를 남겼다. 다시 복직할 수 있도록 힘을 써달라는 일종의 뇌물인 것이다. 오 차장은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서로의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저녁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김 선배를 찾아간 오 차장은 돈을 돌려주고 취해있지 말라고 한다. 취해있으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과거 김 선배와 많이 닮은 장그래를 묘사한다. "성실하고 일 미루지 않고,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은 쏟지만 무리가 없다"는 칭찬이었다. 사업 담당자에서 장그래를 배제시킬 때 "나라를 구한 것도 아닌데"라며 장그래의 가치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것은 일종의 자기 합리화였고, 본래 마음은 아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취해있지 마라"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오 차장에 말에 장그래는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취하고 싶어도 취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게임을 위해서는 돌을 잃어도 끝까지 가야하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3. 섣불리 서로에게 충고를 할 수 없다
장그래의 첫 사업 아이템이 재무팀까지 승인된 순간에도 장백기(강하늘)의 사업계획서는 아직 미승인 중이었다. 본인에 말처럼 자신의 스펙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도대체 내 사업계획서가 뭐가 문제인거지' 정신이 팔려 집중을 못하는 강대리에게 여러번 주의를 받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반면 에이스 안영이(강소라)는 어느덧 부서원 간에 사이도 많이 원만해졌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으니, 바로 그룹 본사에 제출한 그녀의 사업계획서가 채택된 것이다. 문제는 마부장이었는데, 자원3팀 출신인 마부장은 당연히 자원3팀을 백업하길 원했지만 자원2팀, 그것도 여자 신입인 안영이의 아이템이 채택된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과장과 안영이를 불러 스스로 포기하기를 종용했다. 처음으로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된 안영이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개벽이 한석율은 5:5 가르마를 포기하고 자연스럽게 머리를 옆으로 넘겼다. 이제는 자신의 개성을 모두 잃고 무기력을 견디는 방식으로 사춘기 소년처럼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다 터진 지점이 바로 원인제공자 성대리였다. 미국의 수출 건으로 원인터 공장에 풀가동을 요청한 성대리는 무리한 일인지 알면서도 소파천 공급을 강요했고, 안전 문제로 노후 라인을 돌릴 수 없었던 노동자들이 상경하여 마찰을 빚었다. 인턴 당시 '현장, 현장'을 외친 한석율 입장에서는 어느 하나 손 들어줄 수 없는 난감한 순간이었다.
장그래, 장백기, 안영이, 한석율은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진짜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복잡한 사내 정치와 암묵적인 불합리에의 동의. 신입 때 자신만만한 패기는 어디가고 점점 적응이 아닌 순응되어 가는 그들의 모습이 짠해 보였다. 때문에 섣불이 누구 하나 서로에게 충고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충고란 완벽한 자가 불완전한 자에게 누리는 일종의 품격있는 조롱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자가 어디 있으랴.
결과적으로는 장백기의 첫 사업계획서는 승인이 되었고, 안영이는 결국 스스로 사업을 포기해야했다. 그리고 한석율은 현장 노동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다시 한석율 모드로 돌아와 "현장을 무시하면 안 되지 말입니다"를 외치며 손가락이 잘리면서까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하는 현장을 기억했다. 신성한 땀의 가치를 한석율이 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다시 머리를 5:5로 가르면서 "머리를 빨리 길러야 되지 말입니다"를 나직하게 말하는 그가 다시 돌아와서 기뻤다.
4. 최 전무의 동아줄?
장그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오 차장에게 영업부장이 손을 내민다. 바로 최 전무가 제안한 중국 태양열 집열판 수출 건이다. 요르단 중고차 비리 문제로 자신의 라인이 대부분 날라갔고, 새로 세력을 키워야되는 상황에서 최 전무는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오 차장을 자신의 라인에 탑승시킬 계획인 것이다. 과연 오 차장은 이 동아줄을 잡고 올라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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