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격의 수
“판을 흔들어야 한다”
주위에서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요리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한 음식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좋은 평가를 내려주길 기대한다. 문제는 음식의 맛에 있다. 불행하게도 음식에 맛이 없다면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정해진 레시피를 버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레시피를 활용하여 음식을 한 경우, 두 번째는 정해진 레시피만을 따라가다가 주도적인 힘을 잃어 맛의 균형이 깨진 경우이다. 결국은 맛이 없다는 것이고,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기본은 따르면서도 주도적인 독창성을 갖는지가 중요하다.
적어도 장그래는 지금까지 원 인터내셔널에서 신입사원다운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있으면서도 위기와 기회의 순간마다 판을 깨는 파격의 수로 순간 순간을 상대했다. 하지만 이번 요르단 중고차 거래 건은 장그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부담스러운 한 수였다. 장그래는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자”
너무나 총제적 난국 상황에서 오 차장의 승부수는 영업3팀 모든 팀원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는다는 불편한 시선, 박살난 최 전무 라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정치적 고려를 벗어내면 충분히 매력적인 사업이었지만, 문제는 그 ‘사내정치’ 상황을 제거하는 게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장그래의 파격의 수는 영업3팀의 분열을 가져오는 조짐이 되기도 했다. 안영이와 재무부장 에피소드에서 보듯 절차를 무시한 결과는 팀원의 불화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감히 신입의 당돌한 아이디어에 중간에 김 대리와 천 과장은 굉장히 난처한 입장이 된 것이다. 김 대리와 천 과장이 장그래에게 주변을 돌아보고 조직의 체계 절차를 존중하라는 의미는 단순히 장그래의 실력을 견제하기 위한 게 아니다.
임시 영업부장인 마 부장과 한 차례 충돌을 일으킨 오 차장은 뜻밖에 최 전무의 조건부 승낙에 어리둥절해 한다. 바로 전무 이하 모든 이사진 앞에서 요르단 중고차 거래 건을 해야하는 보고회를 하라는 것. 판이 커졌다.
마 부장과 천 과장을 통해 내비친 최 전무의 마음은 이 건은 충분히 수익성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최 전무 입장에서는 자기 라인의 사람들이 날아간 후 심각한 데미지를 입은 상태에서 요르단 건을 다시 추진한 오 차장이 탐탁지 않았겠지만 속마음으로는 누군가 마무리를 해줬으면 하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요르단 건이 타당성을 얻지 못한다면 과거의 악연을 가지고 있는 오 차장을 ‘타당’하게 징계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수익극대화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개인의 이익, 존재의 증명을 위해서는 서로를 견제하고 이겨야하는 냉엄한 사내정치가 드라마 <미생>에 녹아 있다.
2. 매뉴얼보다 더 매뉴얼 같은
중국 진시황제는 전국을 통일하고 도량형을 통일했다고 한다. 바로 서로가 약속을 통해 인정한 기준, 매뉴얼, 스탠다드 말이다. 회사라는 조직은 특히나 이런 매뉴얼이 중요하다. 부서간 직급간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미리 예상할 수 있는 과정과 결과로 이끌 수 있는 약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약속이 매뉴얼이다.
장그래는 입사 초기 독창적인 파일트리로 비판과 칭찬을 동시에 받았다. 회사의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지만, 업무의 프로세스를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파일트리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뒤집어진 세계지도에서 영감을 얻은 장그래는 자신만의 관법으로 보고회 내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매뉴얼보다 더 매뉴얼같은 PT자료는 상대방은 물론 내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온갖 변명과 해명으로 범벅되었다는 것이다.
타당성이 부족한 설득은 실패한다. 판을 뒤흔들더라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리자. 장그래와 오 차장의 찰떡 케미 속에 반대로 점점 분열되는 영업3팀은 이번 보고회가 가져다주는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냉철한 판단력으로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던 천 과장, 점점 흔들리는 김 대리, 재무제표는 볼 줄 모르지만 판을 읽을 줄 아는 장그래, 그리고 모든 부담과 책임을 떠안은 오 차장. 이들은 과연 판을 제대로 흔들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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