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영화 해무] 신자유주의 파도에 뿔뿔이 해체되는 가족 이야기

김광두 편집인 2015. 5. 31. 16:55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야 했다.


영화 <해무>는 IMF라는 국가 경제위기 속에 자본이 전통적인 가치관들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전진호>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잘 보여주었다.


1998년 전남 여수에서 어선 <전진호>를 이끌며 조업을 하는 선장 철주(김윤석)은 IMF 금융위기에 따른 고유가와 어획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선주로부터 오래된 <전진호>의 폐선 처리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구조조정. 선주에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것에 집중하고 돈 안되는 것은 정리해야 하는 나름대로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좀더 엄밀히 따져본다면 실제 선주는 당시 IMF 구제 요청을 했던 무기력한 대한민국이라면 선주와 선장에게 닦달하는 선주의 부인은 남편을 압박하는 IMF, 자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진호>를 폐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는 것이고, 이는 가장인 아버지의 퇴직으로 살림살이가 막힌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야 했다.


IMF가 대한민국에 가져다 준 것은 단순히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라 약육강식이라는 자본주의 법칙에 따라 철저하게 인수분해시키는 사람 단위인 것이다.


뭍에서는 구조조정 압력을 받고, 자신의 마누라가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아무런 저항하지 못하는 철주는 자신의 배인 <전진호>에서 만큼은 "대통령이고 판사고 아버지"인 것이다.



영화 <해무> 스틸컷

"이 배에서는 나가 대통령이고 판사고 느그들 아부지여!"


다 낡아빠진 어선 <전진호>는 철주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당시 대한민국이 거대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서는 모습을 상징한다.


금융기관에서마저 거절당한 철주가 결국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조선족 밀항이었다. 비용이 높은 합법적인 취업 비자가 아니라 가격이 싼 밀항이라는 방법으로 한국에서 취업하려는 조선족들의 수요와 3D 산업 기피로 노동자가 부족했던 한국의 공급 부족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지점에 철주는 뛰어든 것이다.


현대판 노예선이 되버린 <전진호> 선장 철주는 사회에서 약자인 자신과 자신의 가족(전진호 선원)을 지키기 위해 더욱 약자인 자본주의 노예 '조선족'들을 '운반'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IMF가 가져다준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국 사회에 2가지의 선택권을 내보였다. 첫번째는 노동의 유연화라는 미명하에 대량생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이고, 두번째는 "글로벌 스탠더드" 속에 노동의 유연화라는 미명하에 자국민을 비정규화 시켜 자본 이득에 성공한 매판자본(식민지나 후진국에서 외국자본의 앞잡이 노릇으로 이윤을 착취하는 반민족적 토착자본)이 되는 것이었다.


선장 철주는 명확한 비정규직도, 매판자본도 아니지만 그 중간에서 '여상구'나 해경 계장(윤제문)에게 착취당하며 노예(조선족)들을 부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철주는 자신의 선원들한테는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특히나 막내인 동식(김유천)에게는 겉으로는 엄한 아버지이지만 속으로는 다정한 애정을 품고 있다. 동식이 초반에 그물에 발이 걸려 기계에 빨려가기 전에 유압기를 고장내 그를 구할 때, 그리고 물에 빠진 홍매(한예리)를 구하러 동식이 물에 뛰어들었을 때 해경으로부터의 적발 위험을 감수하고 서치라이트를 켜므로써 동식을 구했던 것이다.


한편 동식은 조선족 밀항에 동조하면서도 인간성 회복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홍매에 대한 이성적인 사랑을 표현한 것인지 인간에 대한 애정인지 영화에서 파악하기는 다소 힘들었지만, 피로 얼룩진 광기어린 상황에서 홍매와 몸을 섞는 장면은 생명에 대한 절박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컵라면, 빵가매에서도.


본격적인 이야기의 변곡점은 어창에 숨은 조선족들이 프레온 가스에 질식되어 모두 사망하는 순간부터다. 이미 경제적 가치가 소멸된 조선족들은 아무 필요가 없기에 처분되야한다. 바다로 내던져질 시체들이 물에 떠오르는 것을 막고자 선장 철주의 '도끼 난도질'이 시작되고 선원들은 회복할 수 없는 길을 걷는다. 


이 상황에서 빚쟁이에 쫓겨다니며 숨어 사는 기관장 완호(문성근)가 동질감을 느끼던 조선족 소학교 선생 오남(정인기)이 '해체'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쳐간다. IMF가 몰고 온 '신자유주의' 속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소학교 선생 오남은 1996년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의 살인범을 모티브로 한듯 하다>


더 나아가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오남의 환청에 완호는 해경에 신고하고자 하지만 철주에 의해 살해를 당하는데 이는 신자유주의가 자본을 이용해 인간성을 철저하게 파편화해 나가는 상황을 고발하려는 지식인이나 언론들이 역시 자본에 의해 가로막히고 거세당하는 것을 보여준다. 진실은 자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진실인 것이다.


씨네21 이화정의 표현처럼 영화 후반부 들어서 캐릭터들이 광기에 폭주하는 것이 다소 안타깝긴 했지만, 이것은 초반에 언급한대로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해 해제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스스로 자본에 복속되면서도 가장으로서의 아버지 권위를 놓지않고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선장 철주와 그를 따르는 갑판장, 그리고 자본과 피, 그리고 여자에 대한 욕정에 사로잡힌 선원 경구와 창욱, 마지막으로 아버지라는 권위에 맞써 홍매와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인간성 회복을 갈구했던 동식.


망망대해와 해무 속에 철저하게 고립된 <전진호>에서 드러나는 이들의 욕망과 갈등은 전진만을 외치며 힘들었던 산업사회을 지나 그 과실을 따먹으려던 찰나 IMF 경제위기가 닥쳐 모든 것이 어그러진 상황에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고 착취해야 하는 비극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6년 후 한 식당에서 동식은 홍매로 보이는 여자와 두 자녀를 보지만 확실히 홍매인지는 알 수는 없다. 만약 그 여자가 홍매가 맞고 그 앞에 앉은 딸이 동식의 딸이라면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는 의미로 봐도 괜찮지 않을까?


영화 <해무>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