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9국 10국] 상대가 일으킨 역류에 반응할 때
1. "일만 보고 가자"
영업3팀이 중동 메카폰 건을 멋지게 해내고 보상으로 얻은 인.력.충.원.
하지만 보상이라고 하기에 꽤나 부담스러운 선물이 영업3팀 앞에 도착해 있었다. 박과장(김희원). 자원2팀에서 중동 계약으로 1억2000만 달러를 체결한 전설의 박과장이다. 중동전문가로 현지와의 뛰어난 커뮤니케이션으로 인정받은 훌륭한 사원이지만 첫 대면식에서 서로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적막한 분위기에 인턴 장그래(임시완) 역시 무언가에 압도된 듯한 표정을 짓는다.
박과장 입가에서 묻어나오는 굉장히 기분 나쁜 미소는 무엇이었을까.
오상식 과장과 박과장 둘다 과장이지만 입사 선배인 오과장이 선임이다. 수백 수천이 함께 일하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모든 사원이 조직 친화적인 성격을 가질 수는 없다. 회를 거듭할수록 다른 팀에 비해 사람으로서 호감도가 높아지는 영업3팀 구성원에 박과장같은 오만방자하고 근무태만인 캐릭터는 어울리지 않지만 결과를 따지는 조직의 상부에서는 그런 것 하나하나 신경쓸 수 없다. 특히 박과장이라는 캐릭터는 뛰어난 업무능력과 실적으로 인해 상부에서는 믿고 맡기는 유형의 조직원이다. 이미 회사내에 박과장 인물 자질에 대한 악평이 자자하지만 오과장 본인 박과장이란 캐릭터가 못마땅 하지만, "일만 보고 가자"라는 말 속에 그래도 어쩔수 없음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는 장그래가 받는 인신공격이다. 박과장은 장그래의 약점인 '검정고시 출신'과 '낙하산'을 거론하며 다른 팀 직원들도 있는 공간에서 무안함을 안겨준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라지만 그 후에 이어지는 구두 심부름과 어깨 주무르기 등 회사 업무와 무관한 그의 행동은 상하관계가 엄격한 조직이라고 해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행동에 묵묵히 다 받아주던 장그래에게 싫으면 싫다라고 분명히 말하라는 김동식 대리의 충고는 단순한 충고를 넘어 군대에서 악덕 고참을 둔 후임들의 끈끈한 동지애라고 보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는 사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 인터내셔널에 들어온 장그래의 인턴 동기들은 입사 때 보였던 자신감과 패기는 하얗게 불태우고 조금씩 조금씩 꺼져가고 있었다. 철강팀의 장백기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회사 그리고 강대리에 반하애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고, 개벽이 한석율은 늘 자신만 찾던 성대리가 어느 순간 늘 자신만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호구같은 자신을 한탄하고 있으며, 에이스 신입사원 안영이는 '밑바닥에서 박박 기기'작전으로 남성 우월주의의 자원3팀에서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안영이가 유대리의 깨진 컵을 치우는 동안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뒤쳐졌다고 여겼던 장그래에게 순류니 역류니 하는 위기십결 - 세고취화(접전의 경우 내 형세가 열악하면 싸우지 말고 화평을 도모하라)라는 충고를 듣는 상황이 벌어진다.
바둑이 인생의 전부였던 장그래에게 첫발을 내딛은 사회라는 차가운 현실은 그의 정체성을 발현시키기도 전에 모든 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 주어졌다. 상대가 일으킨 역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참고 기다리는 것, 그러다 상대가 일으킨 역류로 볼 때 자신이 역류가 되어 대응하는 것. 이것을 장그래는 감각적인 수읽기를 통해 세상 모두와 대국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비유에 차이는 있겠지만 장백기는 지금 상대방의 역류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고 안영이는 너무 이른 반응으로 인해 역류에 휩쓸려가며, 한석율은 자신이 반응해야할 때를 잘 안다고 오판한 덕에 때가 아닌 때에 반응을 해버렸다. 거기에 만능 사원인줄 알았던 김동식 대리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약점에서 모든 순간마다 결과가 아닌 새로운 문을 연다는 고백, 자신의 신념과 조직의 질서 사이에서 고민하는 오과장까지... 모든 원인터 사원 아니 이 땅에 모든 일개미, 넥타이 부대들은 매일 세상이라는 상대와 대국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존재감 없는 자신을 보이고 위로 받으며 이해받기 위해 가상공간에서 서로와 연결되어 존재를 확인받는다.
2. 대기업의 이익이 보이지 않는다.
일만 고보 가는 영업3팀에서 일이 생겼다. 오롯이 자신의 작품이었던 요르단 중고차 거래 건을 박과장이 추진한 것이다. 이미 진행된 사업이었던 탓에 오과장의 영업3팀은 숟가락만 얹어 규모를 키우기만 하면 충분히 실적을 채울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장님 코끼리 더듬는 듯 하는 장그래 조차 촉이 오는 이 불길한 기분. 오과장은 장그래의 말똥한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대기업의 이익이 보이지 않는다"
박과장이 추진해온 이 사업은 모든 절차대로 결재를 받아 진행돼왔다. 하지만 협력업체 쪽에 이익이 과다 계산된 부분이 오과장 촉에 걸린 것이다. 영악한 박과장과 나머지 영업3팀 직원들이 숨 막히는 눈치 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박과장이 말단 장그래를 공략해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캐보려 하지만 장그래는 오과장의 과거를 나쁘게 들쑤시는 그의 언행에 더욱 발끈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박과장과 협력업체 간 모종의 뒷거래(백마진)를 의심했던 오과장은 김 대리와 장그래를 협력업체로 파견한다. 명분은 사실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지만 내부감사까지 염려해둔 결정이었다. 그러면서 오과장은 직접 이 사업에 결재했던 김부련 부장에게 이실직고를 하게 된다.
"정황상 그렇다면 그게 맞을 거야. 경험상"
감사가 시작되면 자신의 자리마저 위태로워지는 것을 알면서도 김부장은 그냥 덮으려는 오과장에게 '절차'대로 진행하라고 지시한다. 전무 라인까지 보고된 상황에서 감사팀과 영업3팀 그리고 맞은편에 협력업체와 박과장은 대국을 펼치기 시작한다. 먼저 실수하는 자가 패배하기에 경솔하고 서둘러서는 안되며 일단 전진하게 되면 실패 요인을 없애야 한다며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장그래의 독백에 결연함이 느껴진다.
점점 자신의 연결고리가 다가옴을 느끼며 다급해진 박과장을 보며 장그래는 상대가 놓은 수를 복기하며 마음을 읽어간다. 그리고 때를 맞춰 구원군이 된 장백기에게 박과장의 영문이름이 James Park인 것을 아아낸 장그래가 요르단 현지업체의 이사진 명단에서 James Park을 발견한다. 한마디로 요르단 현지에 자신의 가족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고 원인터내셔널을 통해 자기 자신과 사업을 벌였던 것이다.
몇년 전 1억 20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출 건을 성사시켰지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꼴랑 월급이 전부여서 실망한 박과장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처음에 세상 일이 쉽고 자연스럽다고 느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박과장 앞에 놓인 것은 회사 내 징계절차와 준엄한 법의 심판이었다.
"그래도 바둑"